1993. 9. 1. 『경영신문』, 고려대 경영대학


未來産業과 傳統文化


金    炫


I.

  문화․과학의 올림픽이라고 하는 엑스포는 연일 화려한 전시 장면을 연출해 내고 있지만, 우리사회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햇빛 보기 어려웠던 금년 여름의 날씨만큼이나 침울하다. 중소기업의 자금난, 속출하는 기업 부도, 개선될 줄 모르는 무역수지적자, 대학졸업자들의 취업난....  이른바 총체적 경제 난국이라고 하는 이 불경기의 원인은 무엇인가? 경제전문가, 기업인, 정부당국자들이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찾는데 골몰해 있고, 또 다양한 답변도 제시되어 왔다.  임금상승에 의한 가격 경쟁력의 상실은 그 첫번째 진단이었다. 정부는 국가기관의 임금을 동결하고 사기업들에 대해서도 임금통제의 압력을 행사하였다. 그러나 획일적인 통제는 인력에 대한 투자를 감소시키는 역효과만을 낳은 듯한 인상이다.  문제의 핵심은 거기에 있지 않다는 반론이 제기되었다. 임금 때문이 아니라 기업들이 기술 투자에 인색하고 재테크에만 몰두한 것이 오늘의 불황을 겪게 된 근본 원인이라고도 하였다. 정부는 투기 근절책을 잇달아 발표하고 기업에 대해서는 기술투자를 독려하였다. 그러나 수많은 중소기업들이 투자의 여력을 상실했을 뿐 아니라, 도대체 무엇에 대해 투자하고 무슨 기술을 새로 개발해야 할지 그 방향을 찾지 못하고 있다. 경기가 곧 회복되리라고 하는 낙관론은 점점 그 강도를 잃어가는 듯하다.

  우리 경제의 어려움이 우리가 모델로 삼거나 우리와 경쟁관계에 있는 다른 다른나라들보다 심한 상황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시야를 넓혀 보면 이른바 불황이라고 하는 것이 우리만의 일은 아님을 알 수 있다.  미국, 일본, 그리고 구주제국도 각각 여러가지 이유에서 여러가지 형태로 경제적 몸살을 앓고 있다. 미국과 유럽의 여러나라들은 우리나라처럼 무역적자가 일차적인 고민거리인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무역수지의 흑자폭이 나날이 늘어나고 있는 일본마저도 불황의 비명을 지르고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세계 최고의 무역흑자국이라는 명예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이른바 ‘거품경제’의 소멸에 따른 내수시장의 침체와 ‘엔고’에 의한 수출경쟁력의 상실에 대해 침통한 비명을 지르고 있다. 이것이 실제로 일본 경제의 침체를 표명하는 것인지, 아니면 낙관론보다는 신중론에 익숙한 일본인 특유의 엄살인지는 쉽게 판단내릴 일을 아닐 것이다.  그러나, 긴자 거리의의 백화점이나 아키하바라 전자상가의 소슬한 분위기는 일본 경제가 부딪친 문제의 한 단면을 보여 준다. 이삼 년 전까지만 해도 이곳의 구석구석에 진열된 갖가지 가전제품들은 그곳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들의 경이와 찬사의 대상이었다. 아기자기한 첨단 신제품의 표면에서 뿜어져 나오는 광택과 그것을 바라보는 서구인들의 호기심어린 눈빛이 그 거리의 열기를 고조시켰고, 그것은 곧 일본 경제의 활기를 상징하는 듯했다. 그러나 오늘 토오쿄오 거리의 표정은 그것과는 다르다. 일본의 경제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한 세계적 명성의 가전회사들은 여전히 새로운 모델의 신제품을 상가 진열대에 토해 내고 있지만, 그것은 예전처럼 세계인의 선망의 대상이 되지 못하고 있다. 오늘날 한국이나 일본, 미국과 유럽이 겪고 있는 세계적인 불황의 이유는 너무도 복잡다단해서 어느 누구도 쉽게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필자의 주관적인 사고 속에서 그 원인의 한 가지로 떠오르는 것은  ‘욕망의 소멸’이다.


II.

  필자는 어린 시절의 기억 속에  우리의 부모 세대가 생활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기울여 온 노력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저녁마다 텔레비젼 프로의 한 장면을 얻어 보기 위해 부자집 문전을 기웃거리거나 만화가게 뒷방에서 줄을 서는 자식들 보기가 안스러워 그들은 힘들여 일을 해 돈을 모았다. 풍요로운 생활에 대한 열망이 근로의욕의 동인(動因)이었고 구매력의 원천이었다. 그 시절의 초중고등학교에는 학년초마다 어김없이 학교에 제출하도록 되어 있는 한 가지 서식이 있었다. 이른바 「가정환경조사서」. 가족의 성명과 직업 학력 등을 적는 난 밑에는 그 집에 있는 문화설비에 동그라미를 그려넣는 난이 마련되어 있었다. 전화기, 텔레비젼, 냉장고, 피아노 등등 ....  이러한 것들은 한국의 고도 성장기 동안 각 가정의 소득 수준을 알게 하는 지표 구실을 하였다. 그러한 물건들을 얼마만큼 가지고 있느냐 하는 것은 곧 그 가정이 얼마만큼 풍요의 획득이라고 하는 생활의 목표를 달성했느냐 하는 것을 의미했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그러한 가정 기기들은 더 이상 소득 수준의 지표 구실을 하지 못한다. 초중고등학교의 「가정환경조사서」에서 그러한 식의 설문 문항은 이미 사라져 버렸다.  좋은 의미에서 많은 사람들이 이제는 잘 살게 되었다.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다고 하지만 생활의 편리를 추구해 온 우리의 욕구는 그것이 어느정도 달성된 시점에서 급격히 그 강도가 약화되어 가고 있다.  기능이 보강된 새 모델의 가정 기기들이 계속 개발되고 있기는 하나 그것은 그러한 것들을 전혀 갖지 못했을 때처럼 강열한 소유욕을 불러 일으키지는 못한다. 우리의 생활을 편리하게 해 주는 많은 문명의 이기들을 이제 가질만한 사람들은 대부분 다 가진 셈이다.

  풍요로와지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이 공산품의 구매에 집중되어 있던 시절, 기술산업은 그러한 욕망과 그것이 낳은 구매력에 힘입어 괄목할만한 성장을 하였다. 일본을 세계적인 부국으로 성장시킨 가전산업과 자동차산업이 그 예이다. 그들의 성공의 토대가 된 금세기의 기술문명은 어떠한 점에서도 그들의 창조물이 아니었지만, 그들은 거기에  그들 특유의 가공 능력-물건에 혼을 담는다고 하는 장인 정신-을 발휘하여  서구인들마저도 탐내지 않을 수 없는 제품을 생산해 내었고 그것이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현대 기술문명의 패러다임이 변화하기 시작하였고, 그 조짐이 상품시장에까지 나타나기 시작한 오늘날, 일본의 기업들은 긴장과 위기의식을 느끼기 시작한 듯하다.  기존의 공업생산품들에 대한 소비자들의 욕망이 점차 소멸되어 가고 있는 요즈음  새로운 시장을 창출할 새로운 상품의 개발의 필요성이 전에 없이 긴박한 강도로 대두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더이상 모방과 가공 기술로만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근본적으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낼 창조력이 필요한 것이다.


III.

  의식주의 빈곤에서 벗어났을 뿐 아니라, 생활의 편리를 위해 도움이 되는 것은 웬만큼 다 가진 사회. 그래서 더 이상 공업 생산품에 대해 탐욕스런 욕망을 갖지 않는 사람들의 사회.  그러한 사회에서  생산기업과 유통시장을 계속 살려 나아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새로운 ‘욕망’의 창조가 필요하다. 아직 계발되지 않은 그 새로운 욕망은 이제 ‘물질적인 욕망’이 아니라 ‘문화적인 욕망’일 수밖에 없다고 하는 것은 학자나 예술가들의 이야기이기에 앞서 기업가들의 이야기이다.

  안락과 편리를 추구하는 것은 인간의 보편적인 욕구이지만, 인간이 그러한 방향으로만 끝없이 치닫지는 않았다고 하는 사실이 인류 역사의 도처에서 발견되어진다.  예술은 가진 자들의 향락을 위해 조장되기도 하였지만, 그것에 직접 종사한 예술가들에게 있어서는 물질적인 보상 이상의 의미가 거기에 있었다. 우리의 과거 역사에서 지식인들에 의해 끊임없이 추구되어 온 인간과 자연에 대한 이해의 노력은 그것의 현실적인 효용성에만 목적이 있었던 것이 아니다.  그러한 것들은 인간을 정신적으로 풍요롭게 해 주었으며, 물질적인 안정과 함께 그러한 정신적 가치를 구득(具得)함으로써 인간은 비로소 진정한 풍요를 누릴 수 있었던 것이다. 문화라고 하는 것은 그같은 전인적 풍요를 이룩하기 위해 기울여 온 사회적 노력의 자취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편의성 위주의 20세기 기술산업은 이제 그에 대한 욕망의 고갈로 침체의 위기에 몰린데다가, 그동안의 안락과 편리 추구가 낳은 갖가지 부작용-이를테면 환경 파괴나 인간성 소외-에 대한 범세계적인 반성에 직면해 있다.  이제 이러한 사회에 새로운 역동성을 불어넣어 줄 새 문화는 그동안 우리가 잃어왔던 것을 회복시켜 주는 문화,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회복하고 물질의 풍요와 정신적 가치를 함께 구유할 수 있게 해 주는 문화이다.  그러한 새 문화 창조의 힘은 누가 가지고 있는가?

  6,70년대에 우리 사회가 빈곤에서 벗어나기 위해 밤낮없이 분주했을 때, 그 잘살아 보기 위한 치열한 쟁투를 우리는 스스로 우리의 유서깊은 민족적 저력의 소산이라고 평하였다. 일면 타당한 평가였겠지만, 그것은 결코 우리 민족이 가져온 고유한 힘의 본질이 아니다. 가난에 처해 있다가 부(富)의 실마리가 보였을 때 전력을 다해 그것을 추구하는 것은 어느 민족 누구에게나 기대할 수 있는 일이다. 또한 그것은 부의 성취가 어느정도 이루어졌을 때 급격히 소멸되어질 수 밖에 없는 한시적인 열정일 뿐이다.

  지난 1,20년이 아닌 5천년의 우리 역사 속에서 우리 민족이 부단히 가꾸어 온 삶의 자세는 인간의 전인적 가치를 찾아 그것을 현세에서 실현하고자 한 철학적 자세였다.  우리 선조들의 그같은 철학적 문제의식은 동서 어느나라의 지성사에서보다 더 치열했던 것으로 관찰된다.  그러한 노력의 자취가 오늘날 우리에게 남은 우리의 전통문화이다. 그러한 전통이야말로 정신적 욕망의 창출을 겨낭한 미래 산업의 추진력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기술 위주, 물질적 편의 위주의 현대 사회에서 우리의 전통문화는 한 동안  소외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편의성 위주의 현대 기술산업사회가  한계와도 같은 벽에 부딪친 요즈음 그것의 회생을 위해  전통문화를 돌아보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은 일종의 아이러니로 여겨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은 분명 오늘날 우리들이 깊이 있게 성찰해야 할 현실의 일면이다.  이제 우리의 전통문화, 전통철학은 현대기술문명의 안티테제가 아니라 그것의 한계를 풀어줄 수 있는 용해제의 역할을, 더 나아가서는 그것의 주인 역할을 할 때가 되었다고 보여진다.


IV.

  인간의 물질적 욕망에 편승하고 그것을 조장해 온 20세기의 기술산업이 그 욕망의 고갈로 시들해져 가고 있는 현실 속에서 산업사회의 역동성을 다시 회생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물질적 욕망의 기승 속에서 한 동안 잠들어 있는 정신적 욕망을 일깨워 그것을 기술산업에 접목시키는 일이다.

  과학기술과 정신문화를 접목시킨 ‘문화기술상품’이라고 하는 것은 아직까지는 추상적이고 시험적인 개념이지만, 21세기의 산업을 주도할 것으로 예견되는 정보산업분야에서는 매우 관심있는 연구대상이 되고 있다. 그 대표적인 분야는 광전자매체를 이용한 가전정보 사업과  디지탈 통신으로 대표되는 차세대 방송통신 사업이다.  현재까지의 정보사업은 하드웨어 방면의 기술개발에 치중하여 왔지만, 앞으로는 그 기술 개발의 성과인 첨단 매체에 담을 공급할 소재의 개발에 보다 큰 노력이 집중될 전망이다. 그 소재의 내용은 바로 그 사회 구성원들의 지적, 정서적 욕구를 겨냥한 문화적인 것일 수밖에 없다고 하는 것이 이 분야에 종사하는 전문가들의 일반적인 시각이다. 그들은,  음악․미술과 같은 예술분야, 역사․철학․자연과학과 같은 학문분야의 지식을 정보화 하고, 그것을  첨단 매체를 통해 사회에  보급할 수 있을 때, 그리고 일반인들이 그 정보에 매료되어, 그것의 지속적인 획득을 목적으로 첨단 매체에 의존하기 시작했을 때 정보 기술 산업은 비로소 차세대 산업의 주역으로서의 자리를 확보할 수 있다고 본다.

  21세기를 내다보는 과학문화산업은 편의성 위주의 기존 기술산업과는 구도 자체를 달리하는 것이기 때문에  기존의 것을 모방하거나 겉모습만을 바꾸는 가공의 능력이 아니라 근본에서부터 새롭게 시작하는 창의성이 요구된다. 이 창의성이라는 것은 머리좋은 사람들의 기발한 아이디어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깊고 넓게 온축된 문화적 소양의 토대 위에서만  힘있는 새 문화가 만들어질 수 있다. 쌓여 있는 것이 많아야만 파먹을 것이 많다는 것은 비속한 표현일지 몰라도 5천년의 문화적 전통을 가진 우리 사회가 새로운 기술문화의 창조를 위한 풍부한 소재를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한 적절한 비유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전통문화의 연구자들은 더 이상 ‘사라져 가는 것을 아끼는 동호인’들의 입장에 머물러서는 안된다.  전통문화를 순수학문으로서 연구하는 노력과 함께 그것이 생동감있는 오늘의 문화로서 대중들과 호흡을 같이 할 수 있도록 창조적으로 윤색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정부와 기업이 이들이 그같은 노력을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함은 말할 필요도 없다. 우리들이 그러한 노력을 외면할 때, 차세대 기술문화를 주도할 정보문화 상품은 저급한 향락성향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으며, 우리사회는 이미 우리보다 몇단계 앞서 있는 구미의 정보문화시장에 종속될 수 밖에 없게 되기 때문이다.


  <필자 약력>


. 고려대학교 철학과 및 동 대학원 졸업 (철학박사)

. 학국과학기술연구원 시스템공학연구소 선임연구원, 뉴미디어정보시스템  연구실장 역임

. 현재 서울시스템주식회사 이사